· 은하계·우주·도솔천·UFO ‘진짜 깨달음'(대행 스님)의 진짜 말씀 42-지구·태양계

1.0. 팽이가 운동 중심이 틀리면 똑바로 돌 수 없고 미치광이처럼 돌아가듯 은하계도 무전자 삼각대가 없으면 똑바로 궤도를 돌 수 없다. 예를 들어 외계에서 지구에 생명체가 있는지 알기 위해 탐사를 왔다가 북극지방만 보게 된다면 지구에는 생명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십상이다. 시아버지가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니 지구는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일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행성들을 그렇게 보고 있다. 전체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한쪽만 쳐다보는 것이다.

이 우주 안에는 제각각 수령만큼의 은하계가 있다. 그 무수한 하천세계와 상천세계에 걸맞지 않은 채 말로만 떠든다면 무슨 일이든 무허가로 끝나기 마련이다. 은하계와 통하려면 상대를 하나로 통하고, 유생무생을 모두 통해, 3세를 통해, 나아가 행성까지 통하게 돼야 모든 것을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산책을 나가면 한 가지 생각으로 억만회 순이라도 통해 전체 구정토를 왕래하며 별성과 함께 운행하고 공존할 수 있다. 또 그래야 손가락 하나 벌려 다른 행성을 갉아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1.2. 부처의 손발은 닿는 곳이 없고 어느 행성 어느 은하계 구석구석에서도 평등하게 알 뿐만 아니라 생명의 차원이나 발전단계 정신적 능력의 정도를 상세하게 알고 따라서 곳곳의 능력에 맞게 발전시킬 수도 늦출 수도 있다. 우주가 아무리 크고 행성이 혹은 뜨겁고, 혹은 차가워도 모두 생명이 있으므로 서로 무심의 왕래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마음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수성·금성·화성·목성 등을 가서 알아본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의학적으로 불치 판정이 난 병이라도 고칠 수 없는 병만은 아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시공을 넘어 과학의 한계를 넘어 지혜의 계시를 줄 수도 있다. 다만 세상 사람들을 현혹시키면 아무 이득도 없을 테니 그런 능력을 함부로 쓰지 않을 뿐이다.

  1. 생명 하나하나의 삶은 저마다 눈물겨운 구석이 있다. 모든 생명이 다 내 차원이라는 질병 속에 갇힌 채 그걸 벗어나려고 나도 모르는 노력을 해서 고통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뿐만 아니라 머나먼 우주 멀리 저편에서도 이곳과 다를 바 없는 삶이 펼쳐지고 있으니 중생의 눈과 손과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의 삶은 형형색색이다. 어떤 별의 형편은 이곳과 전혀 달라 아이를 낳는데 일일이 수태해서 낳지 않고 마음에 따라 만들거나, 많은 사람이 할 일이 있으면 하나의 생각으로 다수가 되어 일할 일이 없으면 다시 하나로 맞춰버리기도 한다. 그들의 땅은 마치 보석처럼 빛나 밤낮으로 항상 찬란하다. 그에 비하면 <지구>는 마치 여과체 같고, 마음의 차원에 따라 상천에도 가고 하천에도 가면 바로 중세인 것이다.
  2. 1.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이 가득하다. 이 지구에만 우글거리는 게 아니라 다른 행성에도 우글거리고 있다. 생명체에 동맥·정맥을 통해 피가 돌고 오장육부가 모두 맡은 책임을 다하듯 은하계도 지구도 그렇게 빈틈없이 운행하고 있다. 별 안에 별이 있고 질서정연하게 돌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안정될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3. 1.5. 인간의 재생도 별의 재생도 마찬가지다. 가죽 수명이 길고 짧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주 전체를 금강자석이라고 하면 이 금강자석의 힘에 의해 지구가 돈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는 멸망한다. 다른 모든 행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자석 같은 힘은 누가 갖고 있을까. 우리 마음이다. <우리 마음의 불성>이다. 바로 우리의 능동적이고 활용적이며 움직일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이 생명선이다. 그래서 불성이라 이름 붙였다. 우주는 <불성>에 의해 균형을 잡고 안정되어 있는 것이다.
  4. 1.6. 사람들이 이곳에서 서로 빼앗듯이 행성 간에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빼앗길 줄도 모른다. 배우지 못하고 어리석다면 당해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으니 능력을 키워야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면 여기서도 살고 거기서도 살고 하나로 열로 천만으로 살기 때문에 밖에서 무엇이 오든 비로소 나 말고도 자비롭게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은하계는 크기가 중간값 정도다. 도솔강의 은하는 우리 은하계 같은 것을 2,970개 정도 합쳤을 정도로 방대하다.
  5. 1.7. 과학자들은 단순히 땅·물·불·바람이 모여 삼라만상이 펼쳐졌다고 할지 모르지만 ‘한생명’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다. 바람이 불어 물과 먼지가 하나로 합치면 마치 퇴비를 모아뒀을 때 뜨거운 열과 가스가 나오고 쓰레기에서는 벌레가 생기듯 생명 있는 것이 하나로 합쳐져 능력이 폭발하는 것이다. 이때는 ‘좋다 나쁘다’도 없다. 단지 폭발했을 뿐이다.
  6. 1.8. 이렇게 생긴 생명체가 <밝기>를 알게 되고 그것이 반사되어 자신의 분수를 알게 된다. 이것이 「진화」이자 「창조」이다. 이런 일이 불성의 조화만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이처럼 지수화풍이 합쳐져 큰 성주를 이뤘다는 것은 지수화풍이 합쳐져 힘이 솟았다는 것이고 힘이 솟았다는 것은 화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화를 내니 지수화 바람이라는 말도 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지수화 바람이 바탕이 되어 성주를 이룬 것이다. 곧 우주를 이뤘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홀연한 생각을 하며 우주를 셋으로 나눴다. 그 가운데 부분이 우리가 통상 우주라는 것이다.

2.0. 우리는 우주가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종합해서 <대천세계, 중천세계, 소천세계>로 나뉜다. 비유로 계속 설명하다. 그 세 우주를 아들에게 나눠줬는데 세 아들이 바로 아버지고 아버지가 바로 세 아들이다. 이것은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그 세 아들 중 장남은 7형제를 낳았고 가운데 아들은 3형제를 낳았고 셋째 아들은 5형제를 낳았다. 그리고 그중 아들이 낳은 삼형제가 다시 칠형제를 낳았는데, 그중 삼형제는 생명을 불어넣을 책임을 맡았고, 나머지 사형제는 물질을 만드는 책임을 맡았다. 처음 물질을 만들 때는 경험이 없는 이유로 집을 지어도 가늘고 길게 상투 하나 있는 것처럼 삼각형으로 모양만 겨우 냈다.

2.1. 그렇게 집을 짓고 생명을 불어넣고, 3칸 집이 5칸 집이 되어 방대해지므로 길을 닦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 길을 닦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자 수많은 분야가 생겨나고 다양해졌고 수많은 아이들, 즉 수많은 별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수많은 아이들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성주가 삼형제이고 삼형제가 칠형제이고 칠형제가 수많은 자식이며 수천 수십만이 되어도 성주 하나인 것이다. 이렇게 수없이 만들다 보니 모든 물질이 나오고 태양이 나왔다. 근본부터 근본이 나온 것이다. 이러한 은하계·태양계는 수없이 많다. 우리는 태양계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시골 동네 정도다. 그런데 그렇게 은하가 많고 태양이 많고 별이 많다고 해도 바로 이 한 점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감쌀 수 있다면 얼마나 위대한 일일까.

2) 중국인들은 부처가 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권리는 있지만, 그 무한한 능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을 뿐이다. 하지만 내 깊숙이 있는 한 점의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 금상자를 찾게 되는 것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지구에서 본 것밖에 모르고 그것밖에 상상도 할 수 없다. 다른 세상, 다른 물은 모르기 때문이다. 연못에서 놀던 물고기가 바다를 알 수 없게…

2.3. 어떤 행성에서는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처리한다. 먹고 입고 만들고 없애는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처리된다. 예를 들어 아이를 원한다면 배에 고통을 주지 않아도 아이가 생기고 없애려면 생각이 한꺼번에 없어진다. 오장육부의 더러운 피·똥·고름·소변을 뱃속에 넣지 않고도 청정하고 깨끗한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지면서도 선신세계의 맛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남아도는 모습으로 선신세계에 산다고 해서 부처인 것은 아니다.

2.4. <목성>에서는 지구 사람들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렇게 처참하게 살지는 않는다. 그곳은 밤낮이 따로 없지만 보석이 반사돼 달빛처럼 밝게 비춰준다. 투명한 밝기로 안에서 스스로를 밝힌다. 자신에게 자가발전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멋대로 붙인다. 이곳처럼 전기가 나올 걱정이나 전기세를 걱정하지 않고 편리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거기서는 ‘밤·낮’이라는 단어가 없다. 우리는 왜 그럴 수 없는가 하면 자신을 믿지 못하고 그 도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도리를 안다면 왜 여기서만 살 수 있을까. 여기서 이렇게 공부하면서도 저쪽 동네에 가서도 살 수 있는 것이다. 불성이란 어디를 다녀와도 다녀오지 않는다. 그 동네에 가서 살면서도 여기서 다시 살고 있다. 내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수효는 모래알처럼 많다. 하나가 되려면 하나가 되고 둘이 되려면 둘이 되고 천이 되려면 천이 되고 만이 되려면 만이 된다. 또 하나 없기 위해서는 없다. 자유자재다. 얼마나 좋을까?

2.5.3개의 우주 뒤편에는 <도솔천국>, 즉 엄청난 <범천>이 있다. 범천이란 너무나 광대하다. 우리가 사는 은하계는 아주 작은 지방 정도이다. 이런 것을 그냥 알 수는 없다. 내 마음을 다 깨닫고 성장해서 너무 하얗게 깨어난다.

1.0. 팽이가 운동 중심이 틀리면 똑바로 돌 수 없고 미치광이처럼 돌아가듯 은하계도 무전자 삼각대가 없으면 똑바로 궤도를 돌 수 없다. 예를 들어 외계에서 지구에 생명체가 있는지 알기 위해 탐사를 왔다가 북극지방만 보게 된다면 지구에는 생명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십상이다. 시아버지가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니 지구는 얼음으로 뒤덮인 행성일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행성들을 그렇게 보고 있다. 전체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한쪽만 쳐다보는 것이다.

이 우주 안에는 제각각 수령만큼의 은하계가 있다. 그 무수한 하천세계와 상천세계에 걸맞지 않은 채 말로만 떠든다면 무슨 일이든 무허가로 끝나기 마련이다. 은하계와 통하려면 상대를 하나로 통하고, 유생무생을 모두 통해, 3세를 통해, 나아가 행성까지 통하게 돼야 모든 것을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산책을 나가면 한 가지 생각으로 억만회 순이라도 통해 전체 구정토를 왕래하며 별성과 함께 운행하고 공존할 수 있다. 또 그래야 손가락 하나 벌려 다른 행성을 갉아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1.2. 부처의 손발은 닿는 곳이 없고 어느 행성 어느 은하계 구석구석에서도 평등하게 알 뿐만 아니라 생명의 차원이나 발전단계 정신적 능력의 정도를 상세하게 알고 따라서 곳곳의 능력에 맞게 발전시킬 수도 늦출 수도 있다. 우주가 아무리 크고 행성이 혹은 뜨겁고, 혹은 차가워도 모두 생명이 있으므로 서로 무심의 왕래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마음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수성·금성·화성·목성 등을 가서 알아본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의학적으로 불치 판정이 난 병이라도 고칠 수 없는 병만은 아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시공을 넘어 과학의 한계를 넘어 지혜의 계시를 줄 수도 있다. 다만 세상 사람들을 현혹시키면 아무 이득도 없을 테니 그런 능력을 함부로 쓰지 않을 뿐이다.

  1. 생명 하나하나의 삶은 저마다 눈물겨운 구석이 있다. 모든 생명이 다 내 차원이라는 질병 속에 갇힌 채 그걸 벗어나려고 나도 모르는 노력을 해서 고통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뿐만 아니라 머나먼 우주 멀리 저편에서도 이곳과 다를 바 없는 삶이 펼쳐지고 있으니 중생의 눈과 손과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의 삶은 형형색색이다. 어떤 별의 형편은 이곳과 전혀 달라 아이를 낳는데 일일이 수태해서 낳지 않고 마음에 따라 만들거나, 많은 사람이 할 일이 있으면 하나의 생각으로 다수가 되어 일할 일이 없으면 다시 하나로 맞춰버리기도 한다. 그들의 땅은 마치 보석처럼 빛나 밤낮으로 항상 찬란하다. 그에 비하면 <지구>는 마치 여과체 같고, 마음의 차원에 따라 상천에도 가고 하천에도 가면 바로 중세인 것이다.
  2. 1. 우주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이 가득하다. 이 지구에만 우글거리는 게 아니라 다른 행성에도 우글거리고 있다. 생명체에 동맥·정맥을 통해 피가 돌고 오장육부가 모두 맡은 책임을 다하듯 은하계도 지구도 그렇게 빈틈없이 운행하고 있다. 별 안에 별이 있고 질서정연하게 돌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안정될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3. 1.5. 인간의 재생도 별의 재생도 마찬가지다. 가죽 수명이 길고 짧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주 전체를 금강자석이라고 하면 이 금강자석의 힘에 의해 지구가 돈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는 멸망한다. 다른 모든 행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자석 같은 힘은 누가 갖고 있을까. 우리 마음이다. <우리 마음의 불성>이다. 바로 우리의 능동적이고 활용적이며 움직일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이 생명선이다. 그래서 불성이라 이름 붙였다. 우주는 <불성>에 의해 균형을 잡고 안정되어 있는 것이다.
  4. 1.6. 사람들이 이곳에서 서로 빼앗듯이 행성 간에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빼앗길 줄도 모른다. 배우지 못하고 어리석다면 당해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으니 능력을 키워야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공부를 하면 여기서도 살고 거기서도 살고 하나로 열로 천만으로 살기 때문에 밖에서 무엇이 오든 비로소 나 말고도 자비롭게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은하계는 크기가 중간값 정도다. 도솔강의 은하는 우리 은하계 같은 것을 2,970개 정도 합쳤을 정도로 방대하다.
  5. 1.7. 과학자들은 단순히 땅·물·불·바람이 모여 삼라만상이 펼쳐졌다고 할지 모르지만 ‘한생명’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다. 바람이 불어 물과 먼지가 하나로 합치면 마치 퇴비를 모아뒀을 때 뜨거운 열과 가스가 나오고 쓰레기에서는 벌레가 생기듯 생명 있는 것이 하나로 합쳐져 능력이 폭발하는 것이다. 이때는 ‘좋다 나쁘다’도 없다. 단지 폭발했을 뿐이다.
  6. 1.8. 이렇게 생긴 생명체가 <밝기>를 알게 되고 그것이 반사되어 자신의 분수를 알게 된다. 이것이 「진화」이자 「창조」이다. 이런 일이 불성의 조화만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이처럼 지수화풍이 합쳐져 큰 성주를 이뤘다는 것은 지수화풍이 합쳐져 힘이 솟았다는 것이고 힘이 솟았다는 것은 화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화를 내니 지수화 바람이라는 말도 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지수화 바람이 바탕이 되어 성주를 이룬 것이다. 곧 우주를 이뤘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홀연한 생각을 하며 우주를 셋으로 나눴다. 그 가운데 부분이 우리가 통상 우주라는 것이다.

2.0. 우리는 우주가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종합해서 <대천세계, 중천세계, 소천세계>로 나뉜다. 비유로 계속 설명하다. 그 세 우주를 아들에게 나눠줬는데 세 아들이 바로 아버지고 아버지가 바로 세 아들이다. 이것은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그 세 아들 중 장남은 7형제를 낳았고 가운데 아들은 3형제를 낳았고 셋째 아들은 5형제를 낳았다. 그리고 그중 아들이 낳은 삼형제가 다시 칠형제를 낳았는데, 그중 삼형제는 생명을 불어넣을 책임을 맡았고, 나머지 사형제는 물질을 만드는 책임을 맡았다. 처음 물질을 만들 때는 경험이 없는 이유로 집을 지어도 가늘고 길게 상투 하나 있는 것처럼 삼각형으로 모양만 겨우 냈다.

2.1. 그렇게 집을 짓고 생명을 불어넣고, 3칸 집이 5칸 집이 되어 방대해지므로 길을 닦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 길을 닦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자 수많은 분야가 생겨나고 다양해졌고 수많은 아이들, 즉 수많은 별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수많은 아이들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성주가 삼형제이고 삼형제가 칠형제이고 칠형제가 수많은 자식이며 수천 수십만이 되어도 성주 하나인 것이다. 이렇게 수없이 만들다 보니 모든 물질이 나오고 태양이 나왔다. 근본부터 근본이 나온 것이다. 이러한 은하계·태양계는 수없이 많다. 우리는 태양계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시골 동네 정도다. 그런데 그렇게 은하가 많고 태양이 많고 별이 많다고 해도 바로 이 한 점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감쌀 수 있다면 얼마나 위대한 일일까.

2) 중국인들은 부처가 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권리는 있지만, 그 무한한 능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을 뿐이다. 하지만 내 깊숙이 있는 한 점의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 금상자를 찾게 되는 것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지구에서 본 것밖에 모르고 그것밖에 상상도 할 수 없다. 다른 세상, 다른 물은 모르기 때문이다. 연못에서 놀던 물고기가 바다를 알 수 없게…

2.3. 어떤 행성에서는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처리한다. 먹고 입고 만들고 없애는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처리된다. 예를 들어 아이를 원한다면 배에 고통을 주지 않아도 아이가 생기고 없애려면 생각이 한꺼번에 없어진다. 오장육부의 더러운 피·똥·고름·소변을 뱃속에 넣지 않고도 청정하고 깨끗한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가지면서도 선신세계의 맛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남아도는 모습으로 선신세계에 산다고 해서 부처인 것은 아니다.

2.4. <목성>에서는 지구 사람들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렇게 처참하게 살지는 않는다. 그곳은 밤낮이 따로 없지만 보석이 반사돼 달빛처럼 밝게 비춰준다. 투명한 밝기로 안에서 스스로를 밝힌다. 자신에게 자가발전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제멋대로 붙인다. 이곳처럼 전기가 나올 걱정이나 전기세를 걱정하지 않고 편리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거기서는 ‘밤·낮’이라는 단어가 없다. 우리는 왜 그럴 수 없는가 하면 자신을 믿지 못하고 그 도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도리를 안다면 왜 여기서만 살 수 있을까. 여기서 이렇게 공부하면서도 저쪽 동네에 가서도 살 수 있는 것이다. 불성이란 어디를 다녀와도 다녀오지 않는다. 그 동네에 가서 살면서도 여기서 다시 살고 있다. 내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 수효는 모래알처럼 많다. 하나가 되려면 하나가 되고 둘이 되려면 둘이 되고 천이 되려면 천이 되고 만이 되려면 만이 된다. 또 하나 없기 위해서는 없다. 자유자재다. 얼마나 좋을까?

2.5.3개의 우주 뒤편에는 <도솔천국>, 즉 엄청난 <범천>이 있다. 범천이란 너무나 광대하다. 우리가 사는 은하계는 아주 작은 지방 정도이다. 이런 것을 그냥 알 수는 없다. 내 마음을 다 깨닫고 성장해서 너무 하얗게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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