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육이란 무엇인가.
황단고기는 안함로의 삼순이(삼성기상), 원동준의 삼순이(삼성기하), 행천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 북부여자기, 일십당이맥의 태백일사를 모아 한 권으로 묶은 기념비적인 사서이다.
환란육은 과연 어떤 사서인가? (동영상) 신라의 고승 안함로에서 조선왕조 이맥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학자, 정치인, 수려 등 5명이 저술한 사서가 하나의 책으로 집대성된 것이다.
천년의 세월이 낳은 보물 사서 환단고기 역사를 모르는 자, 역사에 휩쓸려가라-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이를 낳고 성을 가르치지 않는 것과 같다.이 책은 상고시대 동북아 역사와 인류 원형문화의 충격적 진실을 담고 있다.
황당고기는 인류 창세문화 역사의 위대한 문화원전이자 역사경전(동영상) https://youtu.be/j Vc659 JJpa4이지만 삼독에 오염된 강담사학자들의 시각으로는 이 <환단육>의 진면목을 결코 밝힐 수 없다.우리 주류 사학계가 환단육을 그대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실증주의 사관에 중독돼 태고시대 인류가 누렸던 광명문화 신교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기 때문이다.
혹자는 황당고기를 한당고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환율과 한은 다르다. 환은 하늘의 광명, 단은 땅의 광명, 한은 인간의 광명을 뜻한다. 인간 천지의 광명이며 그 안에 하늘 땅의 광명이 그대로 깃들어 있다.
환단후기를 깊이 들여다보면 밝은 환이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의 본성이자 역사의 궁극적 목적임을 알게 된다. 만법귀일이라는 말처럼 역사의 모든 주제가 ‘환'(광명)이라는 한 글자로 통한다.
‘황당고기’가 탄생하고 나서 그 내용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천 년이 넘게 걸렸다. 황단고기를 구성하는 5개의 사서가 집필되고 천년, 황단고기라는 이름의 역사가 출판되기까지 400년의 세월이 흘렀다.황당육은 수십 세기 동안 수많은 선조들의 공덕과 혈성이 빚어낸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황당고기’의 내용과 저자 ‘황당고기’의 원본이 나오고 그 내용이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은 많은 선인들의 혈심 덕분이다.신라의 고승 안함로에서 조선왕조 이맥에 이르기까지 천년의 세월을 두고 5인이 저술한 5종의 책을 1911년 운조 계연수 선생이 한 권으로 엮어 환단고기라는 제목으로 엮었다.
삼성기(상하) 안함로(579640)의 삼성기상과 원동중(조선시대 이전 인물)의 삼성기하가 음양쌍이 돼 한민족의 국통맥을 바로잡아 우리 문화의 원형이 환환(인류 마음의 본성이자 최초의 나라인 환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삼성 기하』는 12대 환국명과 배달의 18대 환웅천황의 계보를 모두 기록하고 있다.두 권을 함께 읽어야 한민족의 상고사 틀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 책은 단군세기 고려말 행촌 이암(李岩, 1297~1364, 고성 이씨)이 편찬한 역사서로 총 2096년 47대 단군의 업적과 중요한 사건을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고조선사를 가늠하는 핵심 키워드인 삼한관 경제를 밝히고, 주류 사학계에서 해석하지 못하는 고조선의 정치와 외교에 얽힌 의혹을 총체적으로 규명한다.# 단군세기 “가림트 38자(원시 한글)” – 훈민정음 제작시 가림트 모방 (세종실록, 세종 25년, 28년)
북부여고려말의 범주가 쓴 책으로 고조선을 계승한 북부여의 6대 단군 204년의 역사와 북부여에서 파생된 다른 부여의 역사를 담고 있다. 부여 역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사서이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출생과 결혼의 비밀을 밝히고, 북부여가 고구려에 계승되었음을 밝힌다.
태백일사 조선 중종 때 보리(1455~1528, 이암의 고손)가 지은 8권의 책으로 환국에서 고려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다진 돼지의 80% 분량)
첫머리의 삼신오제본기는 삼신오제의 사상과 그것을 기반으로 성립된 음양오행사상을 전하는 역사철학서로 신교문화의 기초를 밝힌 사서이다.
‘환국본기’, ‘신시본기’, ‘삼한관경본기’는 ‘삼성기’, ‘단군세기’에서 전하지 못한 환국, 배달, 고조선의 7천 년 역사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소도경전 본훈은 신교의 경전 성립사를 기록한 책으로 한민족의 3대 경전인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 계경을 기록하고 한민족의 우주관, 신관, 인성론을 밝혀준다.
고구려국본기, 대진국본기, 고려국본기는 각각 고구려, 발해, 고려의 역사를 주체적인 시각에서 기록하고 있다.
‘황당고기’의 특징과 가치 첫째, ‘황당고기’는 인류의 창세문명과 한민족 뿌리 역사의 진실을 밝혀주는 유일한 사서이다.
둘째, 환단고기는 단절된 한민족사의 국통 흐름을 가장 뚜렷하고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다.
셋째, 『환단고기』는 환단나, 한한의 소원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환단한의 사상이 실현된 상대 인류와 동북아 역사의 전체상을 기록하고 있다.
황당고기의 첫 문장인 ‘오환건국이 최고'(동영상) https://youtu.be/Ql5u8KgIRXs 넷째, ‘황당고기’에는 한민족 고유의 신앙이자 인류의 시원종교이자 원형문화인 신교의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섯째, 환단고기는 천지인을 삼신의 현현으로 인식한 한민족의 우주사상을 가장 체계적으로 전달한다.
여섯째, 환단고기는 동방 한민족사의 출발점인 배달시대 이래 전승된 우리민족의 역사개척정신인 낭가사상의 원형과 계승맥을 전하고 있다.
일곱째, 『황당고기』는 동방한민족이 천자문화의 주인공이며, 달력문화의 시조로 비로소 수가 발명되었음이 밝혀져 있다.
동방천자의 나라 단군조선 (동영상) https://youtu.be/u6NPXTiWYOU8번, 『환단고기』는 한민족이 천문학의 종주임을 밝히고 있다.
아홉째, 환단고기는 산조시대의 국가경영제도를 전하는 사서로 만고불변의 나라를 다스리는 지침을 담고 있다.
열 번째로, 『황당고기』는 배달과 고조선이 창제한 문자를 기록하여 고대 한국이 문자 문명의 발원지임을 밝히고 있다.
11번째 『환단고기』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시원 역사와 역대 왕조 개척사, 몽골, 흉포한 북방민족의 개척사가 기록되어 있다.
한민족의 역사가 왜곡된 이유화로 인한 사서의 소실, 외세의 사서 탈취, 우리 자신에 의한 고유사서의 소각, 그리고 중화주의사관에 의한 중독, 식민주의사관에 의한 왜독, 서양실증주의사관에 의한 양독, 이른바 삼독에 의해 한민족의 시원의 역사를 끊기고 청량문화가 부정되었다.외래 종교에 중독된 한민족 자신의 역사 부정과 왜곡 또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이유다.
중독: 사대주의 사상에 의한 왜곡 중독은 당, 송, 명을 대중화로, 스스로 소중화로 비하시키는 사대주의 사관이다.
발해 망국 이후 외래 종교사상에 중독된 반민족적 사가들이 자기 역사의 부정과 왜곡을 자행해 이 가운데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유교의 사대주의 사서다.
조선왕조의 사대주의에 입각한 한민족 고유의 역사책 수집과 소각을 지시
2017년 4월 12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그런 망언을 했다면 우리 역사학자들이 역사학계에서 반박성명을 내고 벌집처럼 일어나 궐기대회를 열어야 하는데도 할 말이 없다.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언론도 정부도, 정치가도 묵비하고 있습니다. 식민사학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이 나라의 정의는 살 수 없습니다.
사대주의 역사왜곡 현황: 시진평과 트럼프 회동시 한국 속국 발언 왜곡: 일제 역사 침탈과 의도적 역사 왜곡
왜독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이 왜곡했던 한민족의 역사다.
서구 제국주의 침략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민족을 침탈할 때는 역사를 말살하고 그들의 종교를 내세워 토착문화를 파괴하고 다른 민족에 대한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 종속을 강요했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제 병합한 직후 일제는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전국 각지에서 20만권의 사서를 강탈, 소각했다. 뿐만 아니라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여 조직적으로 한국 상고사를 조작하였다.
조선총독 한국사 왜곡 지시
우리 주류 사학자들이 식민사학을 옹호하고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광복 후 70년 동안 식민사학의 꼭두각시가 되어서는 얼빠진 외톨이 같은 역사를 우리 국민의 정신 속에 무차별적으로 심어놓았다……. 우리나라는 이등병이나.신석호 이후 제2세대, 제3세대 식민사학자들이 그 역사관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이들이 대학에서 역사학자가 되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세계에 있는 역사교과서가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2, 3세대 역사학자들이 중국의 동북공정, 단군신화설, 한사군설, 마치 진실인 양 국민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일제 식민사학의 좀비 역사학자가 돼 버렸다.
서양의 실증주의 사학 해독(史學)
양독은 서양 실증주의 사학의 해독을 말하는 것으로 근대과학주의 역사관에 사로잡혀 한민족의 세계관인 삼신세계관을 인식조차 못하고 오직 유물과 유적에 의해 실증되는 역사적 사실만을 인정하는 폐해다.이는 주관적 판단 없이 역사적 사실을 원상태로 기술해야 한다는 역사학자 랑케(Leopold von Ranke)의 관점을 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 계열의 역사학자들은 단지 유적과 유물에 의해 실증된 역사적 사실만을 인정하는 반면 문헌을 연구하는 사학들은 비판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표적인 고대사자료인 <환단고기> 등의 서적을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신채호 선생은 우리 역사가 왜 왜곡됐느냐. 일본의 적이 침략해 역사서를 불태우고 내란이 일어나 우리 역사서를 불태운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가들에 의해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문헌사학을 비판하고 개신교사관에 입각한 도가사서를 사료로 인정하지 않으며, 환인·환웅·단군에 이르는 한민족 뿌리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다.
일제의 삼국유사 석유환국 조작의 증거이자 조선의 건국신화로 알려진 단군신화가 신화가 아니라 실제 역사임을 입증하는 책이 나왔다. 일제가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 관련 기사를 변조했다는 것이다.
단군 역사실존 보도 – 이병도 교수] 단군은 실존하는 한국의 국조로서 역대 왕조가 단군제사를 지내왔으나 일제강점기에 끊어져 삼국사기 이전의 환단고기 등 고기 기록을 믿어야 한다고 1986년 10월 9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단군역사실존고 해성사 – 이병도 교수
황단고기 진위 논란 황단고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황단고기의 출간 과정이 의심스럽다고 한다. 이들은 1911년 계연수가 간행한 원본이 한 권도 남아 있지 않음에 큰 의심을 가진다. 이유립이 분실됐다는 원본이 보존돼 있었다면 환단고기의 논쟁은 애초부터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황당고기 위서론의 실상 (동영상) https://youtu.be/_bpf Ev-ax88 황당고기 위서론자들은 황당고기가 이유립의 창작이라고 주장한다. 이유립이 1979년(광서이해사본 출판연도) 이전부터 월간지 자유 27에 기고해 온 글을 모아 환단고기를 간행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광어이 해사본은 오현기의 필사본을 영인한 것이고, 오현기의 필사본은 이유립의 소장본을 필사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본이 만들어지고(1949) 그 후 영인본이 나온다(1979)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위서론자들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위서론자들은 더 나아가 계연수가 수안 계씨 족보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계연수를 가공의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안전계 씨 종친회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북한 출신 종친 중 족보에서 누락된 사람은 부지기수다.
계연수를 유령인물로 매도하는 것은 역사적 상황을 두루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인 사실 하나를 내세워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일 뿐이다. 계연수가 실존하는 인물이었음은 그의 제자인 이유립의 증언과 여러 문헌으로 입증되고 있다.
[독립군 역사교재로 쓰였던 황단고기와 광복군이 수첩에 적어 암송한 정부경과 삼일신고]
홍범도 오동진 통단 30권 발행
위서론자들은 또 자유 평등 인류 세계 원시국가 문화 문명 개화 부권 헌법이라는 근대어가 쓰여진 것을 이유로 환란고기를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들이 민족주의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낸 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어휘는 고문헌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 속에서 자유는 ‘자신이 주인이 된다’는 뜻으로, 평등은 산스크리트어의 역어로서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옛부터 쓰여 왔다.
비록 백번 양보해 진정으로 근대어가 가필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환단고기』자체가 완전히 조작된 위서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사의 여러 경전을 살펴보자. 수백,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끊임없는 가필과 재편집을 통한 보정 작업 끝에 오늘의 경전이 되지 않았던가.
[홍산문명 발굴로 밝혀진 한민족의 뿌리 역사배달국, 고조선실존 역사고증-외국고고학사의 실체 입증]
홍산문명은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시대에 걸친 광대한 유물과 유적이 발굴됐다-중국은 황하문명보다 수천 년 앞선 홍산문명을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는 동북공정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중국은 홍산문명 역사편입용 동북공정 돌입
홍산문화는 환국의 후손인 동방한민족이 중심이 되어 이룩한 문화이다.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돌무덤, 빗살무늬토기 등은 한민족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돌무덤은 한반도에서는 발견되지만 중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양식이다. 홍산문화의 주인공은 중국 한족의 조상이 아니라 동방한민족의 조상 동이배달족인 것이다.
홍산문화의 실체-배달국의 옥새(동영상4분) https://youtu.be/dKPACOxcChc
『환단고기』를 구성하는 5권의 사서가 천년에 걸쳐 쓰여진 사실과 그 중 가장 나중에 쓰여진 『태백일사』가 나온 지 400년이 지나 『환단고기』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계연수가 모은 다섯 권은 필사 과정에서 인물, 연대, 장소가 오착되거나 부족한 내용에 가필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환단고기』의 일부 서술어와 연대표시가 사실과 다르거나 다소 엇갈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인류 시원의 역사, 한민족 국통의 맥, 태고적 한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밝히는 환단고기의 독보적 가치가 전면적으로 매도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유립이 스승의 뜻을 받아 환단고기를 재발행하는 과정에서 가필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적인 조작과 첨삭이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보정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 보정도 원자력 발전을 훼손하지 않는 약간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위서론자들은 또 환단고기에 삼신, 삼신일체, 영혼 등 기독교 교리용어와 유사한 말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환단고기는 이 땅에 기독교가 전래된 뒤 조작된 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삼신과 삼신일체는 한민족이 중심에 있던 상고시대 신교문화의 중요한 고유 술어이다. 우리 고유의 문화언어(삼신일체)를 외래 종교의 술어(삼위일체)와 혼동하는 것은 우리 상고사를 바로 보는 안목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교삼신문화의 역사관으로 우리 민족과 인류의 태고 역사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학자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하는 환단고기의 비운은 뿌리문화가 말살된 우리 민족의 참담한 역사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서 논쟁이 한창일 때 환란육의 진실성을 확인하는 연구가 천문학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1993년 서울대 박찬범 교수가 고조선 13세 때인 지난달 단군 시절 일어났던 5행성 결집 현상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처럼 현대과학이 환란고기의 내용을 증명해 보였지만 위서론자들은 여전히 위서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1900년대 초반을 살았던 계연수가 어떻게 평균 250년에 한 번 나타나는 아주 드문 천문현상을 인위적으로 계산해 출현 시기를 정확히 맞출 수 있었을까.[박석재 서울대 출신 천문학 박사가 증명한 오성취루 – 고조선 시대에 천문대 조직이 있었다]
박창범 교수의 발표 이후 한국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환담고기에 대한 진지한 서지학적 검토의 필요성이 적극 제기됐다.
한국 전통 사서인 황단고기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위서라는 것은 기존 사서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한국사의 진실을 묻어버리는 어리석은 행태다.
이제는 진위 논란을 끝내고 환단고기 기록 자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한민족의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회복하고 인류의 시원 역사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팬던고기는 인류 창세 역사와 한민족 9000년 역사의 국통맥을 바로잡는 인류 원형문화의 원전!
환단고기: 귀국 공식 언급–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3주년 3.1절 선언문(1942.3.1)
●”우리 민족은 환국이 창립된 이래 단군·부여·삼한·고려·조선을 거쳐 반만년의 국가주권은 한민족에 의해 계승되었으며”-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3주년 3.1절 선언문(1942.3.1)
“환국은 9천여 년 전에 세워졌으며, 1세 안견환인부터 7세까지 3,301년(기원전 7197~기원전 3897) 동안 존속했습니다” 환자 중 한 명이 평균 470년 이상 다스렸으니 의학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살았던 것이죠. 어떻게 해서 이런 장수문화가 가능했을까요? 『삼성기』의 아래 부분에 보면 “환인이 깨달아 장생하니 온몸에 병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건 진짜 선인의 모습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