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재발견 1920년대생 아버지는 ‘애수의 소야곡’을 즐겨 불렀다. 술 한 잔을 마시거나 해가 지면 곧은 이마를 반쯤 숙여 낮게 곡조를 풀었다. 울어도 옛 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주는 슬픈 이 밤. 가만히 노래를 듣던 어머니는 처음부터 불만이었다. 늘씬한 목소리로 고개를 돌린다. “당신이 눈물로 기다리고 있는 ‘옛사랑’은 대체 누구죠?” 아버지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에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이 노래를 가사 금지곡으로 정했다. 해방동에서 베이비붐 세대까지 아이들 귀에 트로트는 슬프게 청승됐다. 학창시절에는 빌보드 차트니 헤비메탈이니 떠들며 레드 제플린, 에릭 클랩튼, 비틀즈, 아바, 산울림, 양희은 테이프를 끼고 살았다. 트로트는 아예 부모 전용이었다.
80년대에 직장에 들어가면 노래방의 제목만 봐도 누구의 선곡지 모두 나타났다. 부장급 위는 트로트, 아래는 발라드였다. “나그네 설움””번지 없는 주막”” 울고 넘는 박·달제”를 뽑을 새내기는 없었다. 복학생 때 막걸리 집에서 젓가락을 두드리며”해당화가 피어서 떨어지는 섬 마을에…”””를 합창으로 부른 게 트로트 경험의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영화”국제 시장”을 보고그 안에서 나오는 트로트가 희미하게 가슴을 다쳤다. “그래, 그 때 저희 부모님은 그렇게 살아 있었다”라는 재발견 같은 것이었다. TV조선 프로그램”내일은 실수 트로트”이 종합 편성 방송 부문에서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주 목요일 밤 11.18%에 달했다. 경쟁 채널이 갖고 있던 10.75%를 넘어선 것이다. “중장년층이 좋아하는 트로트를 젊은층에게 인기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조합하고””모든 연령층을 잡는 데 성공했다”라고 한다. 트로트에는 시대상과 당대인의 삶이 스며든다. 방송 출연자가 털어놓는 다채로운 인생사가 멋지게 어울리는 때도 많다. “비 내리는 호남선”에서 “목이 메인 이별의 노래를 불러야 옳은지”라는 답을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다. 인생이 너무 아파서 울먹이고 있다. 그것이 뽕짝 음반이다. 문인들이 최고의 대중 가요로 꼽았다”봄날은 간다”는 “연분홍의 치마가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신청의 말처럼 여기에서 백미는 “~ 이었니”. 치맛자락을 흔드는 바람조차 나의 탓은 아니다고 거리를 둬야 했던 애환이 안타깝다. “실수 트로트”은 당초” 낡은 트로트를 사람들이 볼까?”라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야말로 대박으로 드러났다. 고달픈 삶의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출처 조선 일보 20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