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야마 코이치 드래곤 퀘스트 ost 서곡 극우 성향 일본 작곡가 지휘자 편곡가 근황 사망 프로필 나이 도쿄 올림픽 로또 주제 기네스북 폐암 쇼크 반응 댓글

스기야마 고이치 프로필 본명 스기야마 고이치(스기야마 고이치, Koichi Sugiyama) 국적 일본기 일본 출생 1931년 4월 11일 도쿄도 다이토구 사망 2021년 9월 30일(향년 90세) 직업 작곡가, 지휘자, 편곡 가수 이사오 아사히이 소수아키 (2018년 수상)문화공로자 (20년 수상)

일본의 작곡가, 지휘자, 편곡가. CM송, J-POP, 교향곡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장르를 불문하고 작곡을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게임 음악계의 거장으로서 게임 음악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정치 성향이 매우 극우여서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스기야마 코이치 생애 1931년 4월 11일 도쿄도 다이토구에서 태어났다. 엘리트 일가로 유명하지만 아버지는 도쿄제국대 약학과 출신으로 후생성 등에서 근무한 공무원이며 어머니는 도쿄여자의과대학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스기야마는 부모님이 틀어주신 많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그 후 스기야마는 음악가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중학교 입시 면접 때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고등학교 이후 스기야마(山山)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음악 작품을 썼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음악부를 만든 것이다. 고교 3학년 때는 휴지 상태였던 오케스트라를 부활시키기 위해 멤버를 모집했다. 그때 성혜중학교 3학년에 트럼펫을 잘하는 놈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강제로 데려온 것이 훗날 재즈, 뉴에이지 작곡가로 활동했던 핫토리 가쓰히사다. 이를 계기로 핫토리(部部)와 함께 재즈 밴드를 결성해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 등을 연주했다.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팝을 작곡하는 데 도움이 된다.#

스기야마(山山)는 이 시기에 처음 정리된 곡을 만들게 된다. 어린이를 위한 발레 미아 유충 씨라는 발레 음악 노래다. 이 노래는 2016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되는 등 꾸준히 재연되고 있다. 이처럼 음악을 좋아하던 스기야마는 음대를 목표로 했지만 피아노 연주를 못해 음대는 포기했다. 음대를 포기하고 본인의 말에 따르면 ‘어쩔 수 없이’ 당시 집에 돈이 없어 학비가 싼 #도쿄대 이과I류에 입학했다.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약학을 공부했고 이후 교육심리학을 전공했다. 젊었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학창시절부터 작곡을 했는데, 그 경력의 출발점은 작곡가가 아닌 방송 디렉터로서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음악을 공부하며 일할 수 있다는 이유로 라디오 문화방송에 취직했다. 이후 보도부에 배속돼 기자로도 활동하며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곡 선정 등을 담당했다. 나중에 희망했던 연예부에서 근무했다.

이후 1958년 같은 후지산케이 계열사인 후지TV로 이적했다. 이 당시 많은 가요, 경마장 팡파레를 작곡해 히트곡을 배출했다. 지금은 게임음악 작곡가로 유명하지만, 그 이전에는 일본의 그룹 사운드 밴드 ‘더 타이거스’, ‘가로’ 등의 히트곡을 많이 만들어 광고곡을 1,000곡 이상 작곡했다. 후지 TV에서 ‘더 히트 퍼레이드’, ‘새봄 개인기 대회’, ‘어른 영화’ 등 유명 프로그램의 디렉터를 맡았다. 완벽주의 성향으로 카메라맨도 조명도 모두가 악보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 아래 강도 높은 프로그램 만들기에 나선 결과 독재자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영국의 유명 가수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그 가수가 립싱크를 고집하는 바람에 스기야마가 겟아웃을 외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대저택에는 문하생들이 모여 스기야마에게 가르침을 구했고,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음반사 디렉터에서 작곡가로 변신해 일본 역대 작곡가 매출 1위를 기록한 츠츠미 쿄헤이이다. 후지 TV에서 메인 작곡가로 활동하다가 내부의 반대와 디렉터로서의 일을 맡는 한편 부업으로 CM송 작곡을 하던 것이 문제시되어 1965년 후지 TV를 퇴사하였다. 이후 프리디렉터 시절을 거쳐 1968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곡가 전업을 하게 됐다. 전업 후 후술할 ‘과학닌자대 갓챠맨’, ‘사이보그 009’, ‘전설거신 이데온’을 비유한 애니메이션 음악은 물론 ‘돌아온 울트라맨’ 등 특촬물에서도 활동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게임 음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1986년 드래곤 퀘스트 작곡을 맡은 것을 계기로 그의 인지도가 크게 상승하게 된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음악을 담당하게 된 시점에서 스기야마는 이미 매우 성공한 작곡가였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만남은 스기야마가 PC 소프트 모리타 마사키에게 편지[9]를 보낸 것이 계기로, 에닉스의 상부였던 치다 유키노부[10]의 소개로 기용이 결정되었다.[11] 하지만 당시 게임은 대학생 동아리 연장놀이로 만들어졌고 게임사 몇몇은 외부인, 그것도 50대 어른을 넣는 것에 제작진의 강한 반발이 있었다. 특히 프로그래머 나카무라 고이치는 아무리 유명한 작곡가라도 게임을 모르는 사람을 고용해야 하느냐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치다와 스기야마는 나카무라의 집을 찾았지만 처음에는 스기야마를 경계했지만 사실 스기야마는 게임에 대한 상당한 지식이 있었고 이후 나카무라 코이치가 만든 회사 춘소프트의 스태프와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되면서 정식으로 의뢰를 받게 됐다. 당시 패미컴은 음원을 3개밖에 쓸 수 없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스기야마는 “음원이 적다고 작곡할 수 없는 것은 프로가 아니다”라고 단언하며 마스터 업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8곡을 완성했다. 메인 테마의 서곡에 이르러서는 불과 5분 만에 완성되었다고 전해진다.[12] 서곡은 이후 이 시리즈를 상징하는 노래가 된다. 이후 게임 음악 이외의 일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오로지 게임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시기에 오케스트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본인의 음악을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하기도 하고 본인이 직접 지휘하기도 한다. 그가 작곡한 드래곤 퀘스트 음악은 NHK교향악단, 런던필하모닉관현악단에도 연주되며 매년 일본의 많은 교향악단이 연주하고 있다.

그의 작곡 능력은 매우 뛰어나 장르를 불문하고 작곡을 할 수 있으며 교향곡을 통째로 작곡할 정도의 실력이 있다. 편곡 능력도 있어 스기야마는 드래곤 퀘스트의 음악을 브라스밴드 버전, 피아노 버전, 엘렉톤 버전, 현악 4중주, 금관 5중주, 취주악 등으로 편곡하고 있으며 직접 지휘할 때도 있다. 스기야마의 음악 스타일은 작품 전반에 걸쳐 모티브가 반복되는 일관성과 들으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기야마 작곡 양식은 후기 바로크 음악과 초기 고전주의 양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십 년에 걸쳐 갈고 닦은 작곡 능력만큼은 정말 거장의 목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영역에서 놀고 있다. 본인이 왕성한 게이머이기도 하고 나이가 이미 30년 전인 40대 때부터 PC로 게임을 하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게임 잡지에 의견을 투고했는데 에닉스 게임 제작자들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두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덕애에서는 음악뿐만 아니라 게임성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콘서트에서 자신의 팬들과 드래곤 퀘스트9의 엇갈린 통신을 했는데, 스기야마 코이치의 플레이 시간이 200시간을 넘어 모두 경악했다는 일화도 있다. 참고로 모든 드래곤 퀘스트 작품을 플레이했다고 하며, 두케를 ‘내 인생의 작품’이라고 부를 정도로 두케에 대한 애정이 크다.#

또 최종 학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음악에 관한 전문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독학으로 음악을 배웠다.# 특이한 점은 통상 다른 게임이 개발과 동시에 음악을 만드는 반면 스기야마는 게임이 일단 만들어지면 음악이 없는 게임을 자신이 끝까지 플레이해보고 각 이벤트와 장면에 맞춰 음악을 넣는다. 이것이 두괴의 음악이 몰입성이 뛰어난 이유이자 동시에 두괴가 발매가 지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드래곤 퀘스트소드도 원래는 자신이 하려고 했지만 몸을 써서 플레이해야 하는 작품이라 체력이 부족해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고 한다. 두깨 11 기준으로 두깨 음악만 400곡 이상 작곡했다. 두깨 게임 중에서도 ‘수기양’이라는 이름의 동료 몬스터가 나온다. 어떤 괴물인지는 작품마다 달라진다.

애니메이션에서도 다수 참여했는데 대표적으로는 사이보그 009, 과학 닌자대 갓차만 극장판, 전설 거신 이데온, 마법 기사 레이어스[15], 풍래의 시렌[16] 등의 음악 작곡을 담당했다. 고질라 시리즈 음악에 참여하기도 했다.

JASRAC의 훌륭한 분이기도 하고 자신의 음악을 다른 사람이 연주하거나 일부라도 인용하는 것도 싫어한다. 현재 일본음악저작권협회의 무지할 정도로 융통성 없는 운영에 한몫한 인물이다. 오히려 초반부터 이렇게 나온 끝에 일본은 음악 저작권에 한해서는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깨끗한 나라가 되기도 했지만…[17] 저작권에 엄격한 편인데, 특히 싱글벙글 동영상이나 유튜브에 두쿠에 게임이 올라오는 것에는 상당히 관대하다. 본인이 음악에 저작권 제재를 가하면 득애의 플레이 동영상 업로드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하지 않고 있다. 2017년 저작권에 대한 방침을 공개했지만 음악만 따로 올리는 것은 허용하지 않지만 드래곤 퀘스트 플레이 영상과 함께 올리면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덕애의 실황 플레이도 즐긴다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에 본인이 실황 플레이를 보기 위해 저작권을 걸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2016년 9월 3일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음악을 84세에 작곡했고, ‘세계에서 가장 고령의 현역 게임 음악 작곡가’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이후 드래곤 퀘스트 신작이 출시될 때마다 이 기록이 경신 중이다. 기록이 인정될 때 배경음악으로 깔린 게 덕애에서 카지노에서 대박나면 나오는 팡파르 음악이었다. 2018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게임 음악가로는 처음으로 훈장 욱일소수장을 받았고, 2020년에는 역시 게임 음악가로는 처음으로 문화공로자 칭호를 받았다. 2021년에는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그가 작곡한 ‘서장: 로또의 테마’가 각국 입장 행진곡으로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

스기야마코오이치사망

2021년 9월 30일 패혈증성 쇼크로 사망한 사실이 10월 7일 스퀘어 측을 통해 알려졌다.# 스기야마(山山)와 함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를 상징했던 호리이 유지와 토리야마 아키라가 각각 조사를 발표했다. 참고로 사망 시 국내 사이트에서는 정치적 성향을 불문하고 ‘잘 죽었다’는 등의 댓글이 많은데, 아마도 하단의 위안부 부정과 같은 극우적인 정치적 성향 때문으로 보인다.

스기야마코오이치수상 경력

스기야마 고이치 극우 성향의 여러 실적과 능력과 대조적으로 행동하는 극우로 유명하며 극우 계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정원 요시유키 같은 인물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극우 인물 예술가 중에서도 최종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스기야마만큼 활발하게 악질적으로 행동하는 극우 인사는 아무리 일본이 우경화해도 드물다. 스기야마는 이미 십여 년간 이런 활동을 하면서도 2021년 두괴 최신작을 비롯해 계속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의 자위를 목적으로 군사력을 행사한다는 평화헌법은 당연히 부인하고 있으며 일본은 지금 중국 러시아 대한민국[49]에 주권을 침해당하고 있으므로 지금 당장 전쟁을 해도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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