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사고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애초에 가능한 개념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하는 선에서 타협하고 최대한 목표에 수렴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해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에 가깝다. 이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음 링크를 참고하라.글을 이해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글을 떠나 어떤 감정이나 상황을 이해했다는 것은 무엇일까? 예를 들면 두…blog.naver.com 그래서 결국 암기와 이해는 극한으로 가면 사실상 구분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나는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자주 쓰는 편이다. 어제 이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외로움을 드러내고 이것이 도대체 왜 외로운지에 대해 고민해봤다. 도대체 왜? 난 정말 아무 감정이 없고 그것도 꽤 높은 빈도로 쓰는 말인데. 생각해보니 이건 내가 상대방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같은 한국인 화자인데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왜요?

나는 태생이 제주도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는 위의 찰방에서 쓰이는 이모티콘처럼 ‘몸냥해’라는 말이 있다. 친구나 가족끼리도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표준어로 번역하면 결국 ‘마음대로 해라’가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사실 의미가 다르다기보다는 뉘앙스적인 차이가 있는데요. 확실히 제주어는 한국어 방언*임에도 불구하고 1:1로 번역했을 때의 느낌이 달라진다. 심지어 번역이 안 되는 단어도 있다. 혹시 ‘니치름’이라는 제주 사투리를 알고 있나?

딱히 표준어에서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없어! 사람은 언어로 사고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면 그 사고의 한계가 다르게 결정된다. 생각해보니 좀 무서운 것 같기도 해.

  • 다만 제주어는 다른 지역 방언과 달리 다른 언어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다른 방언과 달리 중세 한국어에서 갈라졌기 때문에 잘 알고 있지만 단어나 표현이 많이 다르다.

다른 예를 추가로 찾아봤어. 서양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영어로 안부인사는 “Howare you?”. 이에 대한 답변 멘트는 I’mfine이나 I’mgood 같은 문장. 기분이 안 좋을 때 표현도 많지만 굳이 상대방에게 “나 기분 나빠!” 하면서 표현하는 일은 없다. 러시아어로 간다면 어떨까? 러시아에서의 안부 인사는 ”’ᄅ시 ロシアᄋ 。 」 だ ””이다. 발음은 kakdela. 그렇다면 좋다는 뜻의 ‘khorosho, 잘 아는 하라쇼)’라고 대답하는가? 물론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이지 않다. 러시아에서는 보통 이런 경우에 ‘가수프랑카'(normal’no 노르마르너)라고 답한다. 영어의 normal과 똑같다.

그렇다면 러시아인들은 좋을 때도 좋다고 하지 않고 보통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어.구어적인 normal은 아무 문제 없이 보통이라는 의미에 가깝기 때문에 fine의 의미에 더 가깝다. (문어적으로는 영어의 normal과 똑같다) 따라서 번역하면 normal이지만 실제 러시아에서의 사용법은 fine을 포함하는 쪽이 된다. fine이라고 쓰고 번역해 버리면 “kochno”(otlichno)라는 전혀 다른 단어가 나온다…

모두 분홍색이지만 모두 다른 다신호등의 녹색 신호를 파란불로 하듯 한국어도 예전에는 녹색과 파란색을 크게 구분하지 않았다. 푸르다/푸르다라는 말 자체는 자연에서 보이는 잎과 물과 하늘의 색을 모두 가리키는 말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언어체계로는 녹색과 파란색을 구분할 수 있을까. 아닌 것 같아. 뭔가 다르긴 하지만 말이 없으면 구분할 수 없어. 마치 사진 같은 모든 색을 다 핑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근데 쇼콜라 레드 이런 거 갈색 같은데.

어떤 언어도 1:1로 완전히 번역되기는 어렵다. 심지어 사투리 격에 해당하는 단어조차 그럴 때가 있다. 하지만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에 서로 느끼는 언어적 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바벨탑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서로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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