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상선언> 에너지 1등급, 1급수, 친환경 등… 무언가를 고를 때 상품에 대한 신뢰를 주는 마크가 있다. 선택에 도움이 되는 보증마크, 한국 영화계에서 찾아보면 ‘김서진’이라는 이름이 적합하지 않을까. 최근 5년간 그가 출연한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최대 홈런, 못해도 1루타 정도는 가볍게 날려주니까. 가장 최근 출연작 <비상선언>은 이것저것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래도 이 영화 또한 최상급의 ‘항공재난’ 장면은 확실히 보장하고 있다. <비상선언>에서 승무원 김희진으로 출연한 김서진을 최근 5년간 맹활약으로 재구성했다.<더 킹>



웃으면서 상대방을 잘 때리는 검사.갑자기 김소진의 등장은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냥 갑자기, 어디선가 갑자기 들어오는 모습. <더 킹>에서 검사 안희영으로 출연한 김소진은 이른바 ‘남판’인 검사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검사들을 흔들었고, 동시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 흔들었다. 웃는 얼굴로 바른 말을 골라 말하는 안희연 검사는 ‘더 킹’의 영웅이자 관객들의 답답한 마음을 꿰뚫는 사이였다. 눈살을 찌푸리거나 무게감 없이 한태수를 압박하는 모습이나 상대방의 도발에도 타지 않고 여유롭게 대응하는 능청스러운 성격은 이 캐릭터가 얼마나 곧은 내면을 갖고 있는지를 단번에 드러낸다. 어떤 면에서는 요즘 말로 하는 진짜 광기처럼 느껴져 종종 무섭다. 정말 담담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김서진 본인은 당시 수많은 인터뷰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자기는 그렇게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고.<재심>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두 사람의 스틸컷 온도차가 극 중 이준영의 변화를 보여준다.사실 김소진의 ‘갑자기’는 <더 킹>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2017년 전체를 봐도 그의 기습은 유효하다. 〈더 킹〉이 개봉한 지 한 달 만에 김소진은 영화 〈재심〉에서도 얼굴을 비췄다. 변호사 이준영(정우)의 아내 강효진 역을 맡았지만 전작만큼 스토리를 관통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의 배경 2016년을 연다. 거기에 이준영을 보는 시선을 대변하고.무엇보다 안희연 검사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 주변에 가까운 인물처럼 그려져 친근함이 느껴진다.<아이 캔 스피크>
김소진의 2017년 세 번째 영화.’아이 캔스피크’는 영어를 배우려는 나옥분 할머니(나문희)와 9급 공무원 민재(이재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처음에는 영어가 주 소재 같지만 나옥분 할머니가 사실 위안부 피해자였음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시야를 확장시키고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들에게 눈을 돌린다. 김소진이 연기한 금주는 정확한 소속이나 직업이 밝혀지지 않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을 두루 만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살아온 옥분은 그런 금주를 피하려 하지만 급기야 금주 설득과 친구 정심(손숙)의 투병에 마음을 돌린다. 김서진 특유의 단정한 말투가 인상적이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속에 꽉 담아둔 울분과 할머니들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는 캐릭터. 어떤 부분에서는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뒷받침해준다고 볼 수 있다.<공작>
2017년 출연작을 쏟아내며 잠시 숨을 돌린(?) 김소진은 2018년 <공작>으로 돌아왔다. ‘장주 아내’라는 배역명에서 보듯 그렇게 비중이 큰 인물은 아니다. 공작원 흑금성/박석영(황정민)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광고대행업체 직원 한창주(박성은)의 아내와 스치듯 나온다. 한창주 역의 박성웅부터가 우정 출연이기도 하고. 큰 잔향을 남길 인물은 아니지만 ‘보증수표’라는 시각으로 김서진의 출연작을 살펴보면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어서 이렇게 슬쩍 지명한다.<마약왕>
2018년 연말에는 <마약왕>의 손숙경 역으로 찾아온다. 무심코 마약을 밀수하며 거물이 되는 이두삼(송강호)의 아내 성숙한 경은 영화에서 아주 다채롭게 그려진다. 바로 평범한 집안에서 (비록 마약 밀수라는 범죄를 통해서지만) 부잣집 마님이 되는 성숙한 경의 변화를 통해 관객들 또한 김서진의 다양한 모습을 영화에서 볼 수 있었다. 이두삼이 손경경이 말다툼을 벌이며 서로 손뼉까지 치는 장면은 송강호와 김소진이 탁월한 연기력을 엿볼 수 있는 명장면이다.
사진에서 찰싹찰싹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미성년>
김소진의 장편 상업 영화의 첫 주연작. 이전에도 단편영화나 2014년 소속 극단 ‘차임’에서 제작한 ‘씨, 베토벤’에서 주연을 맡은 적은 있지만 상업영화 기준으로는 ‘미성년’이 첫 주연이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처음’이라는 키워드와 인연이 깊은데 배우 김윤석의 연출 데뷔작이자 김해준, 박세진이라는 신예 배우들이 등판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태원(김윤석)이라는 남자, 그의 아내 영주(염정아)와 딸 쥬리(김해준), 그가 만나는 미희(김서진)와 딸 윤아(박세진)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무래도 바람피는 상대, 불륜녀 하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김윤석이 설계한 미희라는 캐릭터와 김서진의 연기가 만나 상당히 현실적인 인물상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한편으로는 철없는 사람 같기도, 어쩌면 이렇게라도 사랑을 갈망하는 게 사람의 가장 순수한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정형화가 진행되지 않은 캐릭터와 장면, 멋진 연기가 뒤섞인 좋지 않은 작품.<남산의 부장들>
지난 2020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코로나19 팬데믹을 정면으로 본 〈남산의 부장들〉에서 김서진은 데보라심으로 출연했다.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마약왕>과 궤를 같이하고 있지만 성숙한 경이 정말 신분 급상승한 사모님 이미지를 한껏 내놨다면 데보라심은 커리어 우먼다운 고풍스러운 의상과 다소 강렬한 메이크업이 다르다. 낮은 김소진의 목소리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꽤 있다. 유능한 로비스트라는 캐릭터 설정은 김소진이 가진 아우라가 더해져 더욱 부각됐다. 영화가 박통 김규평(이병헌)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다 보니 해외 첩보전이 일단락되는 순간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중심에서 물러난 것이 아쉬울 정도다.<모가디슈>
2021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 ‘모가디슈’에서 김윤석과 김소진이 재회했다(이번에는 진짜 부부로서). 두 사람은 각각 소말리아 한국대사관의 한신성과 아내 김명희 역으로 출연했다. 진짜 현지인처럼 검고 건조한 피부 이면에는 당시 적과 가까웠던 북측 인원을 포용할 수 있는 관용이 숨어 있다. 영화 내내 두 사람이 개신교 신자임이 암시되지만 결국 북측 인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끝까지 함께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착한 사마리아인 우화를 연상시킨다.씨네플레이 성창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