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의 두 영웅이야기 택시기사
데모한 사람이 천 벌 받으면 시위를 시킨 사람은 무슨 벌을 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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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는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대사. 정말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시위가 있었다. 시위는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다. 잘못된 일에 잘못됐다고 용감하게 소리쳐 준 영웅들의 흔적이고 지금의 결과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옳지 않은 것을 바로잡기 위해 용기 있게 말하거나 모르는 것을 자신 있게 듣는 사람은 드물다. 앞으로 소개할 이 영화를 보고 많은 관객들이 공감하고 배웠으면 좋겠다.
<사진> 택시기사 포스터, 4명의 주연이 서 있다.
영화 ‘정보택시운전사’는 2017년 8월 2일 개봉한 15세 관람객으로 드라마 장르의 한국 영화이다. 이 영화의 총 상영시간은 137분으로 9.28의 평점과 함께 1,218만명의 관객수를 기록했다. 1980년 5월 18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당시 상황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택시기사 ‘김사범’을 중심으로 다룬 이야기다.
이 영화의 제목이 택시 운전사인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직업이 택시기사였던 것과 평범한 시민이 함께 뭉쳐 군사정권에 저항하며 항쟁한 정신을 잘 살려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택시기사 등장 인물, 많은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
이 영화는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 고지전 등 영화감독을 지낸 장훈 감독의 작품이다. 등장인물을 보면 송강호(김만섭 역), 토마스 크레치만(위르겐 힌츠페터 역), 유해진(황태술 역), 류준열(구재식 역)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 이밖에 최귀화(사복조장 역), 박혁권(최기자 역), 엄태구(박선학 중사 역) 배우를 비롯한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했으며 정진영(이기자 역), 고창석(상구 아빠 역), 정석영(서울카센터 사장 역) 등 배우들이 특별출연으로 등장했다.
수상 내역을 보면 2017년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음악상, 한국영화 최다관객상을, 제3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조연상, 제17회 디렉터스컷 시상식에서 올해의 새로운 남우상과 올해의 특별언급 등의 상을 수여받았다. 2018년에는 제16회 피렌체 한국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관객상을 수여받으며 수많은 수상 내역을 기록했다.
줄거리!! 스포일러 주의!!
<사진> 만섭과 딸이 마주 앉아 있다.
영화는 학생들의 시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만섭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만섭은 아픈 아내와 사별 후 딸을 혼자 키우면서 택시기사로 일한다. 월세도 제때 갚지 못해 애를 먹던 만섭은 운전기사 식당에서 외국인 손님을 태우고 광주로 갔다가 통금 전에 돌아오면 1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엿듣는다. 외국인 고객은 일본에서 활동하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였다.
<사진> 만섭과 힌츠페터는 광주로 가던 중 검문소에 잠시 멈춘다.
힌츠페터는 일본에서 한국에서의 상황이 정말 심각하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취재하러 가기로 했다. 기자 신분을 숨기고 외국인 선교사 행세를 하며 한국에 들어와 이기자를 만난다. 이 기자에게서 정보를 듣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힌츠페터는 광주로 가기 위해 미리 타기로 한 택시가 아닌 만섭의 차를 타고 광주로 향한다.
<사진> 힌츠페터는 광주에 도착해 재식과 학생들을 만난다.
광주로 가는 길에 엄격하게 길을 통제하던 군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다행히 다른 길로 검문소를 통과해 광주에 도착한다. 광주에 도착해 학생 재식을 만나고 힌츠페터는 그의 무리에 합류해 이동한다. 필름백을 만섭의 차에 두고 온 힌츠페터는 재식과 함께 만섭을 찾아 셋이서 광주를 돌며 금남로로 향한다.
<사진> 공수부대가 시민을 무차별 폭행하고 진압한다.
건물 옥상에서 최 기자를 만나 힌츠페터는 최루탄을 통한 진압과 시민을 향한 공수부대의 무차별적인 폭력을 카메라에 일일이 찍기 시작한다. 이 사태를 본 만섭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며 관심을 갖지 않고 옆에서 광주의 한 시민이 준 주먹밥을 꺼내 먹는다. 시위 진압이 심각해지자 현장에 직접 내려가 촬영을 계속하는 힌츠페터는 시위대 안에 잠복해 있는 사복 경찰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사진> 만섭의 차가 고장나 수리를 맡긴다.
현장을 떠나 서울로 향하려던 만섭은 차가 고장나 수리를 맡기게 된다. 집에 혼자 있는 딸을 생각하며 걱정하는 만섭은 전화통화를 시도하지만 외부와의 연결이 모두 단절된 광주에서 통화가 어려워 실패한다. 이런 만섭의 모습을 돈 문제로 오해한 힌츠페터와 몸싸움을 벌인다.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묵어야 하는 만섭과 힌츠페터는 광주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던 태슬의 집에 머물기로 한다. 만섭과 힌츠페터는 왜곡된 허위 보도만 내보내는 뉴스를 보면서 태슬의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
<사진> 사복경찰이 만섭과 힌츠페터를 쫓는다.
같은 시각 최 기자를 비롯한 다른 기자들과 함께 전남매일신문사에서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다른 직원들이 나타나 저지하게 된다. 그렇게 전국의 모든 언론사가 통제되고 진실을 알릴 수 없다. 태슬의 집에 머물던 재식과 만섭, 그리고 힌츠페터는 분노한 광주시민이 방송국을 불태우면서 나는 폭발음을 듣고 현장으로 향한다.
<사진> 태슬이 만섭에게 새 번호판을 준다.
현장에서 다시 촬영하던 힌츠페터는 사복경찰의 눈에 띄게 되고, 이를 보고 깨달은 재식은 만섭과 힌츠페터를 데리고 달아난다. 그렇게 달아나 재식은 사복경찰에게 붙잡히고, 만섭과 힌츠페터는 무사히 빠져나와 태슬의 집으로 향한다. 아침 해가 뜨면 만섭은 딸을 생각하며 힌츠페터를 두고 떠나려 한다. 태슬은 서울 택시 번호판을 바꿔 광주를 빠져나가라고, 새 번호판과 광주시민도 잘 모르는 길을 알려준다.
<사진> 광주를 빠져나온 만섭은 식사를 하다가 주먹밥을 보고 딸에게 전화해 광주에 다시 들른다고 전한다.
광주를 벗어나 서울로 향하던 만섭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가게 사장이 내준 주먹밥을 보며 광주에서의 기억을 떠올린다. 전화로 딸에게 귀한 손님을 두고 왔다며 달아난 만섭은 다시 차를 돌려 광주로 향한다. 광주에 있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죽은 재식과 태슬, 그리고 힌츠페터를 다시 만난다. 다른 광주 택시기사들이 태슬에게 시위 현장에서 공수부대 사격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다시 현장에 나선다.
<사진> 만섭은 힌츠페터를 데리고 광주에서 나오던 중 검문소에서 위기를 겪는다.
무차별 총격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택시기사들이 힘을 합쳐 죽거나 다친 시민들을 구출한다. 최 기자는 현장에 있던 만섭과 힌츠페터에게 지금이 광주를 벗어날 기회라고 말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광주를 떠난다. 상부에서 서울 택시 차량을 무조건 통과시키지 말라는 지시에 검문소에서 위기를 맞지만 트렁크에 있는 서울 번호판을 봐도 박성학 중사는 모른 척 보내준다.
<사진> 만섭은 무사히 힌트페이터를 김포공항으로 데려가 작별을 고한다.
사복경찰은 이들을 막기 위해 끝까지 쫓아오지만 광주 택시기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와 김포공항에 도착한다. 일본으로 귀국한 힌츠페터는 모든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성공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만섭을 찾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2003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하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은 힌츠페터의 연설로 영화는 끝난다.
느낀 점, 실제로 있었던 배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 만큼 큰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됐다. 많은 명배우들이 출연해 남다른 연기를 선보이며 영화에 매료됐다. 각 배우들이 자신이 맡은 역할의 성격을 잘 살려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배우 송강호가 김만섭이라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며 영화 속 줄거리가 전개되면서 나타나는 심경 변화를 행동과 표정을 통해 공감하며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두 주인공 사이에서 다른 국적에 다른 언어를 사용해 대화가 잘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사람으로서 마음이 통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
<사진> 실제 김사옥과 율계 힌츠페터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한편으로는 이 일이 불과 42년 전에 있었던 일로, 우리 부모님 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 때 있었던 일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한국과 다음 세대를 위해 용감하게 맞서 싸워준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다. 결국 함께 만나지 못한 두 사람에게 너무 아쉬움도 컸다. 5·18민주화운동이 있은 지 4년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다 1984년 간암으로 숨진 실존 인물 김사범 씨와 세계에 이를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건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에게 경의를 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1
518민주화운동의 두 영웅이야기 택시기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