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넷플릭스 정기결제를 하지 않았을 때다. 그러다가 TV에서 우연히 어떤 광고를 봤다. 예고가 너무 재밌어서 개봉하면 보려고 했는데 찾아보니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단독 영화였다. 그때는 넷플릭스를 정기결제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 영화가 너무 궁금해서 보고 싶어서 처음으로 넷플릭스 정기권을 결제했다. 그렇게 개봉하자마자 본 영화. 2018년 개봉한 ‘수전 비엘’ 감독의 ‘버드 박스’.
공개했을 때 한번. 2020년 유럽 여행 가기 전에 영화 다운받아서 집에서 한번. 그리고 엄마가 결말을 제대로 못 봤다면서 다시 만나자고 해서 다시. 직장에서 다른 지역에 사시는 아버지가 최근에 집에 오셨을 때 다시 한 번. 그렇게 총 4번 봤어. 신기하게도 내용을 알고 여러 번 보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포스터
영화 버드박스는 2014년 출간된 조시 멜러먼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줄거리는 이렇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면 무섭게 변해버리는 괴현상(스스로 목숨을 끊는)에 인류는 종말로 향하고,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두 아이를 지켜야 하는 주인공 메리의 극한 사투를 그리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궁금해서 책을 찾아봤어.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보면 전체적인 줄거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다만 책은 ‘괴현상’에 주목해 서술된다면 영화는 ‘메리’라는 인물과 그 감정에 주목해 진행된다.
보면 죽다니. 무슨 말인가 싶은데 진짜 보면 죽는다. 그것도 스스로. 뭘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본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신기하게 변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초자연 현상, 재난물 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라 우리에겐 익숙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난의 원인이 되는 ‘무언가’에 대한 정체가 영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다시 재건되는 세상은 기대할 수 없다. 다만 최소한의 생존 방법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영화는 괴현상보다는 멜러리라는 인물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월드워Z>처럼 뛰어난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어다니다가 결국은 극복할 이야기가 아니다. 메리는 두 아이와 생존을 위해서만 버틴다.
보면 안 되지만 ‘무엇’을 보면 안 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 이 영화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서는 알려주지 않는 게 좋았을 것 같아. 만약 무엇인지 알았다면 다른 영화와 다름없이 재난을 극복하려는 영웅적인 주인공으로 그려졌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에게는 큰 재난과 시련이 닥쳤을 때의 지극히 평범한 개인의 시선도 볼 필요가 있다. 바로 그게 ‘우리’니까. 무엇을 어떻게 잃고 어떻게 무너지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견뎌내고, 그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누군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메리라는 인물이 죽고 무너져 내리고. 그래도 버티고 지켜낸다. 결국 다시 벌어지는 이야기를 치밀하고 섬세한 감정 변화를 통해 보여준다. 우리는 메리를 쫓는 것만으로 충분히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에는 메리와 그 주변 인물 외에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는 사람들이다. 시각장애인은 당연히 그것(앞으로 이렇게 칭한다)을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잘 안 되는 것도 없어.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은 메리와 그녀의 두 아이가 시각장애인학교에 도착하게 되면서 생존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상황에서는 누가 약자일까. 이 영화에서는 그것을 보지 말아야 할 보통 사람들이 가장 위험에 처해 있다. 반대로 사회에서 약자로 분류돼 은근히 무시당하고 동정이든 뭐든 항상 시선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가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장애를 가진 이유만으로 약자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약자가 되어야 하나. 그들은 왜 원치 않는 시선을 받아야 할까. 결국 우리는 똑같이 무력한 존재이고, 똑같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존재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지점은 보는 행위다. 우리는 항상 봐야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보면 안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아남기 위해 보면 안 되지만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볼 수 없게 된다. 세상이 혼란에 빠져 못 보게 되는 일이 많아진다. 말 그대로 그것을 보면 안 되기 때문에 밖에서는 눈을 감아야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우리가 보아온 것을 볼 수 없다.
그리고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절망밖에 남지 않은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난다. 메리와 톰은 두 아이와 숲에서 함께 살고 있다. 밖을 이동할 때는 눈을 가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몸에 끈을 매고 움직인다. 또 그걸 보고도 자살하지 않고 이상하게 변해버린 북부의 사이코들(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유인해 그것을 보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 정신이상자가 그것을 보면 자살하지 않고 이렇게 변한다.’에서도 들키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와중에도 톰은 두 아이에게 꿈꿔주기를 희망을 말한다. 메리는 변해버린 세상에서 어차피 가질 수 없는 헛수고가 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톰은 두 아이에게 알린다.
어렸을 때 이런 형태의 배가 있었어. 여름마다 호수에서 타곤 했다. 여름마다 갔었어. 너희들도 좋아할텐데. 나무도 있고 꽃도 있어. 물은 따뜻하고 하늘에는 구름이 있었다. 다들 물에서 놀았어. 아이들 모두가 호숫가를 뛰어다녔다.”
세상에 다른 아이도 있어요?”
물론 너희들 같은 애들이 있지. 어느 날 아주 큰 참나무를 보았다. 나무가 이 집보다 컸다. 너무 커서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왜 그럴까?”
“올랐어요”
올라갔다, 맞다, 올랐다.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올라갔다. 꼭대기에서 뭐 본 것 같아?”
톰과 아이들이 즐겁게 나누는 이야기를 메리가 화를 내며 그만두게 한다. 그리고 톰과 싸운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해. 나가서 다른 애들이랑 나무 올라갈 것 같대 나비랑 꽃도 본대. 나무에 돌아갈 수도,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도 없는데. 살아남아야 한다고. 그러자 톰이 말한다. 뭔가를 믿어야 한다고. 믿을 게 없으면 다 무슨 의미가 있어. 살아남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다 꿈꾸는 것이 인생이다라고 톰의 대답. 아이들은 꿈꾸고 사랑받고 희망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한다. 어머니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한다.
메리는 쓸데없는 희망과 애정을 주지 않기 위해 두 아이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걸”과 “보이”라고 부를 뿐이다. 하지만 톰이 죽고 두 아이와 거센 강물을 지나갔고, 그에 휘말릴 뻔한 위기를 극복하고 시각장애인 학교로 향하면서. 메리는 정말 두 아이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두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그냥 살기 위해 그럴 수 없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메리(アリー 映画ー)는 두 아이에게 이름을 붙인다. 걸에게는 자신이 만난 사람 중 가장 착했던 사람의 이름인 ‘올리비아’에서.보이에게는 끝까지 자신과 두 아이를 지키고 사랑해 준 ‘톰’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제가 이 아이들의 엄마입니다.” 자신이 두 아이의 엄마라고 마음을 담아 말할 수 있게 된다.
톰이 말했듯이 메리는 두 아이와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절망 속에서도 사랑은 있고 희망도 존재한다. 안 봤다고 못 보는 건 아니야.
정체도 모르는 것에 대해 아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절망적인 상황과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는 스릴러 영화가 아니라 한 인물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또 이 영화가 가진 다양한 의미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 추천 영화로 <버드박스>를 언급하며 새기고 있는지도.
해석의 여지는 확실히 많다. 내가 모든 것을 서술하기에는 잘 설명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든 시선에 관한 철학적 관점이든. 그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해 주는 우수한 사람들의 글이 많다. 나는 해석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이다.
마지막으로,
톰( は トム)은 나무 꼭대기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내가 뭘 봤는지 알아? 나무 꼭대기에서?둥지를 보았다. 다섯 마리 새가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그리고 날아갔다.<버드박스> 톰의 대사 중 2020.04.17 / 타블로그 투고 2021.07.01 / 현블로그 투고 (약간수정)